룸비니와 부처님의 인연 룸비니의 과거에서 현대까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부처님의 족적 footprint of Shaka

부처님의 탄생부터 출가, 입멸까지. 불교의 사대성지 중 하나인 룸비니에서는 지금도 그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부처님의 족적을 거슬러 올라가봅시다. 목차에서 지명을 클릭해주십시오.

룸비니
히말라야 산맥 기슭, 부처님 탄생의 땅으로 불교 4대성지의 하나입니다. 룸비니 주변에는 부처님 이전의 붓다(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탄생의 땅으로서 아쇼카왕이 석비를 남겨 둔 자리가 있습니다. 신들이 사는 산, 히말라야 산맥. 그 기슭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카빌라바스트
부처님이 29세에 출가 할 때까지 지낸 장소로, 성터가 발견되었습니다. 현재에도 물소가 활보하는 한가로운 풍경을 마주하면 부처님의 면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출가 후, 부왕을 만나기 위해 돌아왔을 때 체재했다고 알려지는 사원 터 등이 부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데부다하
성모 마야데비의 고향입니다. 여기에도 아쇼카 왕이 순례했던 때에 세운 석주의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이 성지에는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를 친정으로 맞이하러 가는 습관이 있어, 부처님이 왕자였을 때 세자비인 아쇼달라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또한 부근에는 부처님 입멸 후 8개로 나뉘어진 유골 중 하나가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지는 라마그라마의 스투바가 있습니다.
붓다가야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땅입니다.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에 잠긴 부처님은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윤회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날은, 월력에서는 탄생과 같은 날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중심에 위치한 대보제사는 2002년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불교성지로서 세계 각국에서 순례자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르나트
깨달음을 얻은 후, 그 깨달음의 길에 대해 처음으로 설법한 장소입니다. 불교의 시작으로 부처님 첫 설법의 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에 가까우며, 그 시대부터 많은 종교자가 모여들었습니다. 아쇼카 왕 시대 이후에 조영되었으며 대규모의 사원 흔적이 발굴되어 인도의 국장(國章)으로 쓰이는 아쇼카석주 첨탑의 사자 모티브도 이곳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라지기르(라자그리하)
불교전도를 개시한 부처님을 열심히 보호한 빔비사라 왕이 통치한 마가다국의 수도입니다. 근교에는 부처님이 가르침을 설교한 장소로 유명한 영취산이나, 부처님 입멸 후 제자들에 의해 불전 편찬회의가 열렸다고 하는 동굴이 있습니다.
슈라바스티
헤이안모노가타리의 시작부에 있는 「기원정사의 종소리, 제행무상의 울림이니・・・」로 유명한 기원정사의 흔적이 있어, 현재는 유적공원으로서 정비되어 있습니다. 신원정사는 대상인 스닷타가 부처님에게 시주하기 위해 사재를 들여 왕족으로부터 양도받아 세운 사원으로, 부처님은 많은 우계(雨季)를 이곳에서 보내셨다고 합니다.
바이샤리
상업도시로서 불교를 독실히 신앙한 리차비족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부처님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는 스투바 터가 있습니다. 라지기르에서 카비라바스트로 향하는 길목에 있으며, 부처님의 일행들이 우기를 지낸 장소이기도 합니다.
쿠시나가라
부처님이 입멸하신 땅입니다. 부처님 열반 때에는 사라쌍수의 꽃이 만개해 흩날렸다고 합니다. 입멸 후의 유골(불사리)은 8개의 부족이 나누어가졌으며, 그 중 한 개가 라마그라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